길을 걷다 보면 이상한 곳을 발견할 때가 있습니다.
분명 사람들이 다니는 길이 있고, 자동차도 지나가는데 도로명 표지판은 보이지 않습니다.
어떤 길에는 ○○로, ○○길 같은 이름이 붙어 있는데 바로 옆에 있는 작은 통로에는 아무 이름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길이 있으면 당연히 도로명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도로명주소 체계에서 말하는 ‘도로’와 우리가 일상적으로 부르는 ‘길’이 항상 같은 개념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도로명주소법에서는 도로를 도로법상 도로뿐만 아니라, 차량이나 사람이 통행할 수 있는 일정한 통로까지 포함해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도로명주소를 부여하기 위해서는 그 도로에 도로구간을 설정하고 도로명을 부여하는 별도의 기준과 절차가 적용됩니다.
그렇다면 실제로 어떤 경우에 도로명이 없을 수 있을까요?
우리가 생각하는 ‘길’과 주소에서 말하는 ‘도로’는 다르다
먼저 가장 중요한 부분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우리가 평소 사용하는 ‘길’이라는 표현에는 아주 다양한 공간이 포함됩니다.
사람만 다니는 좁은 통로도 길이라고 부르고, 아파트 단지 안의 통행로도 길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공원 산책로도 길이라고 하고, 건물과 건물 사이의 통로도 길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도로명주소에서는 이런 공간을 모두 똑같이 취급하지 않습니다.
도로명주소법은 도로를 일정한 기준에 따라 정의하고, 도로명주소를 부여하기 위한 도로구간을 별도로 설정합니다.
여기서 도로구간이란 도로명을 부여하기 위해 설정하는 도로의 시작지점과 끝지점 사이의 구간을 말합니다.
즉, 실제로 사람이 지나갈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바로 도로명주소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도로가 있다고 해서 무조건 도로명을 붙이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도로명주소를 관리하는 기관은 모든 통행로에 이름을 붙일까요?
그렇지도 않습니다.
현행 도로명주소법은 도로명 부여가 필요한 경우 도로구간을 설정하고 도로명과 기초번호를 부여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특히 법령에서는 도로명주소의 부여·관리를 위해 필요한 경우 도로구간을 설정하고 도로명을 부여하는 구조를 두고 있습니다.
이것은 상당히 중요한 차이입니다.
“길이 존재한다”와 “그 길에 도로명주소 체계가 적용된다”는 서로 다른 문제입니다.
도로명주소의 목적은 단순히 모든 통행 공간에 이름표를 붙이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건물 등의 위치를 체계적으로 표시하고 관리하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건물이 없다면 도로명도 필요하지 않을 수 있다
여기에서 흥미로운 부분이 나옵니다.
도로명주소는 결국 주소를 찾아가기 위한 위치정보 체계입니다.
따라서 어떤 도로에 건물이나 시설물이 전혀 없고, 그 도로에 건물번호를 부여할 필요도 없다면 도로명 부여의 필요성이 낮아질 수 있습니다.
실제로 과거 법령에 대한 법제처 해석에서는 일정한 도로에 대해 건물번호 부여가 필요하지 않은 경우 도로구간 설정 및 도로명 부여를 하지 않을 수 있다고 해석한 사례가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건물이 없으면 무조건 도로명이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도로명주소 제도에서는 해당 도로에 도로명주소를 부여하고 관리할 필요가 있는지를 기준으로 판단한다는 의미에 가깝습니다.
따라서 단순히 “사람이 다니는 길이니까 이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면 실제 주소 체계를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반대로 건물이 없는데도 도로명이 있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면 반대의 경우는 어떨까요?
아직 건물이 많지 않은 도로나 개발 예정 지역의 도로처럼 현재 건물이 거의 없거나 없는 곳에도 도로명이 부여될 수 있을까요?
가능합니다.
도로명주소 체계에서 도로명은 건물에 붙이는 이름이 아니라 도로구간 자체에 부여하는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도로명주소법은 도로명을 “도로구간마다 부여된 이름”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도로구간이 설정되고 도로명 부여가 필요하다고 판단된다면, 건물이 가득 들어선 이후에만 도로명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이 점이 상당히 중요합니다.
도로명과 건물번호는 서로 관련되어 있지만 같은 것은 아닙니다.
도로에 이름이 먼저 존재하고, 그 도로를 기준으로 건물번호가 부여될 수 있습니다.
도로명과 건물번호는 한 세트처럼 움직인다
앞선 글에서 건물번호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건물번호는 건물이 접하는 도로구간의 기초번호를 기준으로 부여됩니다.
현행 시행령에서도 건물등의 주된 출입구가 접하는 도로구간의 기초번호를 기준으로 건물번호를 부여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 구조를 단순하게 표현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도로
↓
도로구간 설정
↓
도로명 부여
↓
기초번호 부여
↓
건물의 주된 출입구 위치 확인
↓
건물번호 부여
이렇게 연결됩니다.
따라서 도로명과 건물번호를 따로 생각하면 주소 체계가 복잡하게 느껴지지만, 하나의 흐름으로 보면 훨씬 이해하기 쉽습니다.
그럼 이름 없는 작은 골목은 무엇일까?
이제 우리가 실제 생활에서 자주 보는 상황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큰 도로 옆에 아주 좁은 골목이 하나 있습니다.
사람들이 자주 이용하지만 별도의 도로명판은 없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몇 가지 가능성이 있습니다.
해당 통로가 도로명주소 체계에서 별도의 도로구간으로 설정되지 않았을 수도 있고, 다른 도로구간에 포함되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또한 건물의 주된 출입구가 어느 도로에 접하는지에 따라 건물주소가 결정될 수도 있습니다.
즉, 눈에 보이는 통로 하나하나가 모두 독립된 도로명주소의 도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주소는 실제 공간을 그대로 복사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공간을 행정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일정한 기준으로 나누고 연결한 정보 체계이기 때문입니다.
도로구간은 아무렇게나 나누지 않는다
그렇다면 도로명주소에서 도로구간은 어떻게 정할까요?
현행 시행령에서는 도로구간을 설정할 때 여러 가지 기준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연결된 도로가 있다면 도로망이 구성될 수 있도록 연결하고, 도로의 폭과 방향, 교통 흐름 등의 특성을 고려합니다.
또한 가급적 직선에 가깝게 설정하고, 도로의 연속성을 유지하면서 최대한 길게 설정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시작지점과 끝지점을 정할 때도 아무 곳이나 선택하는 것이 아닙니다.
강이나 하천, 바다 같은 자연적인 지형이나 시·군·구의 경계 등을 고려하며, 서쪽과 동쪽을 잇는 도로는 원칙적으로 서쪽을 시작지점으로, 남쪽과 북쪽을 잇는 도로는 남쪽을 시작지점으로 설정합니다.
이렇게 보면 도로명주소는 단순히 “길마다 이름 붙이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도시의 도로망 자체를 하나의 체계로 정리하는 작업에 가깝습니다.
도로명이 없는 도로에 이름을 요청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실제로 도로명이 필요한데 아직 이름이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 경우에는 법에서 별도의 신청 절차도 마련하고 있습니다.
도로명이 부여되지 않은 도로에 도로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해당 관할에 도로명 부여를 신청할 수 있습니다.
신청 대상 도로가 어느 범위에 걸쳐 있는지에 따라 담당 기관도 달라집니다.
하나의 시·도에 걸친 도로인지, 여러 시·군·구에 걸친 도로인지 등에 따라 행정안전부장관, 시·도지사 또는 시장·군수·구청장이 담당하게 됩니다.
그리고 도로명을 새로 부여할 때는 지역주민과 지방자치단체의 의견을 수렴하고 주소정보위원회의 심의를 거치는 절차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즉, 도로명은 필요에 따라 행정적으로 새롭게 만들어질 수도 있는 것입니다.
주소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곳을 발견했다면
길을 걷다가 도로명이 없는 곳을 발견했다고 해서 반드시 주소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눈으로 보는 도로명판은 도로명주소 체계의 일부를 보여주는 시설일 뿐입니다.
실제 주소는 도로구간, 도로명, 기초번호, 건물번호 등의 정보가 서로 연결되어 만들어집니다.
따라서 작은 골목에 도로명판이 없더라도 그곳에 있는 건물이 다른 도로구간을 기준으로 주소를 가지고 있을 수 있습니다.
반대로 실제로 통행할 수 있는 길이라고 해서 반드시 독립적인 도로명이 존재해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이 차이를 알고 나면 지도에서 보이는 길과 주소에서 사용하는 도로가 왜 항상 똑같지 않은지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길’이라는 단어가 있다고 모두 같은 길은 아니다
여기에서 앞선 2편의 내용도 다시 연결됩니다.
도로명에서 사용하는 ‘길’은 단순히 우리가 평소 말하는 모든 길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길이라는 도로명이 붙어 있다면 그것은 도로명주소 체계에서 정해진 하나의 도로명입니다.
반대로 우리가 일상적으로 “저쪽 길로 가세요”라고 말하는 통행로는 주소 체계에서 별도의 도로명으로 관리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같은 ‘길’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만 의미는 전혀 다를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도로명주소를 이해할 때 일상적인 언어와 행정상의 용어를 구분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도시에는 이름이 붙은 공간과 그렇지 않은 공간이 함께 있다
도시는 모든 공간에 이름이 붙어 있는 곳이 아닙니다.
큰 도로에는 도로명이 있고, 작은 골목에는 다른 도로구간의 도로명이 연결되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건물에는 건물번호가 있고, 건물 내부에는 동·층·호 같은 상세주소가 추가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서로 다른 정보가 층층이 연결되면서 하나의 주소가 만들어집니다.
우리가 주소를 입력하면 지도에서 정확한 건물을 찾을 수 있는 것도 이런 위치정보 체계가 만들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주소는 현실의 공간을 그대로 복사한 지도가 아니라, 현실의 공간을 찾기 쉽게 정리한 하나의 규칙입니다.
다음에 이름 없는 골목을 만나면
다음에 길을 걷다가 도로명판이 없는 작은 골목을 발견해 보세요.
“왜 여기는 이름이 없지?”라고 생각해 보는 겁니다.
그리고 주변 건물의 주소를 한번 확인해 보세요.
그 건물의 주소가 어떤 도로명을 기준으로 만들어졌는지 살펴보면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할 수도 있습니다.
눈앞에 있는 길과 주소에 사용되는 도로가 항상 1대1로 대응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주소는 단순히 ‘어디에 사는지 알려주는 이름표’가 아닙니다.
도로를 구간으로 나누고, 이름을 붙이고, 숫자를 배치하고, 그 위에 건물번호를 연결해 만들어진 도시의 위치정보 시스템입니다.
그리고 그 체계에는 우리가 평소에는 잘 눈치채지 못했던 여러 가지 규칙이 숨어 있습니다.
VERYBIG은 앞으로도 이런 작은 차이를 하나씩 들여다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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