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길을 걷다 보면 이상한 점 하나를 발견할 수 있다.
분명 도로인데 이름이 제각각이다.
강남대로, 테헤란로, 중앙로, 세종대로, ○○길, ○○로12길…
어떤 곳은 ‘대로’라고 부르고, 어떤 곳은 ‘로’라고 부른다.
그런데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갑자기 같은 도로 이름 뒤에 숫자와 ‘길’이 붙는다.
예를 들어
○○로
였던 도로가 조금만 들어가면
○○로 12길
처럼 바뀌는 식이다.
그렇다면 이 이름들은 누가 마음대로 붙이는 것일까?
아니면 ‘대로’는 큰 도로, ‘로’는 중간 도로, ‘길’은 작은 골목이라는 정도의 의미만 가지고 있는 것일까?
실제로는 생각보다 훨씬 구체적인 기준이 있다.
‘대로·로·길’은 그냥 이름이 아니다
도로명주소에서 도로명은 단순한 별명이 아니다.
도로명은 도로구간에 부여된 공식적인 이름이고, 도로의 규모에 따라 ‘대로’, ‘로’, ‘길’ 등의 구분을 사용한다.
도로명주소 관련 안내에서는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기준을 사용한다.
- 대로: 폭 40m 이상 또는 왕복 8차로 이상
- 로: 폭 12m 이상 40m 미만 또는 왕복 2차로 이상 8차로 미만
- 길: 대로와 로에 해당하지 않는 도로
즉, 도로명 끝에 붙은 한 글자만 보고도 그 도로가 어느 정도 규모인지 짐작할 수 있다.
물론 실제 도로명 부여에는 도로의 특성과 연결 관계 등 여러 요소가 함께 고려될 수 있기 때문에, 단순히 도로 폭만 보고 모든 도로명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기본적인 구조는 이렇다.
큰 도로 → 대로
중간 규모 도로 → 로
그 밖의 도로 → 길
평소에는 아무 생각 없이 지나쳤던 한 글자에 도로의 체계가 들어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길’은 무조건 골목일까?
여기서 한 가지 주의해야 한다.
‘길’이라고 해서 무조건 사람이 겨우 걸어 다닐 정도의 좁은 골목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도로명주소에서 ‘길’은 기본적으로 ‘대로’와 ‘로’에 해당하지 않는 도로를 의미한다.
그래서 실제로는 차량이 충분히 다닐 수 있는 도로인데도 이름이 ‘길’로 끝나는 경우가 있다.
반대로 도로가 상당히 넓어 보이더라도 법적인 도로 구분과 도로명 부여 기준에 따라 다른 이름을 사용할 수 있다.
결국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대로 = 엄청 큰길”
“로 = 보통길”
“길 = 골목”
이라는 이미지는 이해하기에는 편하지만, 정확하게는 도로명 부여 체계에 따른 구분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
그런데 더 신기한 것이 있다
도로를 걷다 보면 이런 주소를 볼 수 있다.
○○로 12길
처음 보면 조금 이상하다.
왜 그냥
○○길
이라고 하지 않고 굳이 ‘○○로 12길’이라고 부르는 것일까?
여기에는 도로와 도로가 연결되는 방식이 숨어 있다.
큰 도로에서 작은 도로가 갈라져 나오는 경우, 그 작은 도로가 어느 도로와 연결되어 있는지 알 수 있도록 주된 도로의 이름을 활용해 도로명을 정하는 방식이 사용된다.
행정안전부도 골목길의 도로명을 설명하면서, 인접한 큰길의 도로명에서 분기되는 골목길에 숫자를 붙여 사용하는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예를 들어 ‘양화로10길’은 큰 도로인 양화로에서 갈라지는 도로임을 이름에서 알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하면
○○로
라는 큰 도로가 있고,
그 도로에서 작은 길이 갈라지면
○○로 ○길
이라는 이름이 붙을 수 있다는 것이다.
도로 이름 자체가 일종의 위치 정보가 되는 셈이다.
‘○○로 12길’의 12는 무슨 뜻일까?
여기서 또 하나의 궁금증이 생긴다.
○○로12길
에서 숫자 12는 도대체 무엇을 의미할까?
많은 사람이 이 숫자를 단순한 골목의 순서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도로명 부여 방식에 따라 숫자가 만들어지는 원리는 조금 다를 수 있다.
특히 기초번호방식에서는 분기되는 지점의 기초번호를 활용해 ‘번길’ 형태의 도로명을 만들 수 있다.
예를 들어
○○로 12번길
같은 이름을 보면, 단순히 “열두 번째 골목”이라는 뜻으로만 이해해서는 안 된다.
도로명주소에서는 도로를 따라 부여된 기초번호와 도로의 분기 관계를 활용해 위치를 표시하기 때문이다.
즉, 도로명에 들어 있는 숫자도 그냥 붙인 번호가 아니라 위치를 찾기 위한 정보로 활용된다.
도로명주소 안내자료에서도 분기되는 도로에 도로명을 부여할 때 주도로와의 관계를 고려하는 원칙을 확인할 수 있다.
‘길’에도 번호가 붙는 이유
그렇다면 왜 골목이 하나뿐인 곳은 그냥 ‘○○길’이라고 하면 될 것 같은데, 어떤 곳에는 ‘○○로1길’, ‘○○로2길’, ‘○○로3길’처럼 숫자가 계속 붙어 있을까?
이것 역시 도로의 위치를 구분하기 위해서다.
큰 도로에서 여러 개의 작은 도로가 갈라진다고 생각해 보자.
첫 번째 갈림길에 있는 도로와 세 번째 갈림길에 있는 도로를 모두 ‘○○로길’이라고 부른다면 구분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각각을 구별할 수 있도록 숫자를 붙인다.
결국
도로명 + 숫자 + 길
이라는 이름 자체가 단순한 명칭이 아니라 도로망 안에서의 위치 관계를 표현하는 방식이 된다.
이 때문에 지도에서 도로명을 자세히 보면 상당히 재미있는 규칙이 보인다.
도로 이름만 봐도 주변 도로를 추측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지도에서
○○로
라는 이름과
○○로15길
이라는 이름이 함께 보인다면 어떤 관계일 가능성이 높을까?
그렇다.
‘○○로15길’은 이름 자체에서 ○○로와 연결된 도로일 가능성을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도로명주소는 이런 식으로 도로 간의 관계를 어느 정도 이름에 담아내도록 만들어졌다.
그래서 처음 방문하는 동네에서도 도로명판을 잘 살펴보면 주변 도로의 구조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행정안전부는 도로명주소가 위치를 쉽게 찾을 수 있도록 도로마다 도로명을 부여하는 것을 기본 원칙으로 하고 있으며, 골목길의 경우에도 큰 도로와의 관계를 파악할 수 있도록 도로명을 부여한다고 설명한다.
그런데 왜 같은 ‘길’인데 이름이 다를까?
우리나라 도로를 보면 비슷한 규모의 도로인데도 어떤 곳은 ‘길’, 어떤 곳은 ‘○○로○길’, 또 어떤 곳은 다른 방식으로 이름이 붙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도로명은 단순히 현재 도로 폭만 보고 자동으로 컴퓨터가 이름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도로구간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 기존 도로와 어떤 관계를 갖는지, 주민들이 위치를 찾기 쉬운지 등의 요소가 함께 고려된다.
특히 도로명주소 제도에서는 도로의 직진성과 연속성, 주변 도로와의 관계 등을 고려해 도로구간을 설정하는 원칙이 사용된다.
그래서 실제 도시에서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모든 도로가 격자 모양으로 깔끔하게 나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다양한 도로명이 만들어진다.
재미있는 사실 하나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도로명주소는 ‘땅 위의 도로’만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주소 체계는 계속 확장되고 있다.
행정안전부는 2022년부터 지하도로와 고가도로 같은 입체도로에도 도로명을 부여할 수 있도록 주소 영역을 확대했다고 설명했다. 기존의 평면적인 도로 중심 주소체계에서 지하·고가 등 입체적인 공간까지 위치정보의 범위를 넓힌 것이다.
즉, 우리가 생각하는 ‘주소’의 개념은 단순히
“어느 동네 몇 번지에 있는 건물”
을 표시하는 것에서 점점 더 복잡한 도시 공간의 위치를 표현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도로 이름은 도시의 지도를 읽는 방법이다
결국 ‘대로’, ‘로’, ‘길’은 그냥 도로 이름 뒤에 붙이는 장식이 아니다.
그 안에는 도로의 규모와 체계, 주변 도로와의 연결 관계가 어느 정도 담겨 있다.
다음에 길을 걷다가
○○대로
를 만나면 “아, 이곳은 큰 도로구나”라고 생각해 볼 수 있고,
○○로
를 만나면 중간 규모의 도로일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리고
○○로12길
을 발견한다면 그 길이 어디에서 갈라져 나왔는지 주변 도로를 한번 살펴보는 것도 재미있다.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도로명주소는 단순히 택배를 받기 위해 존재하는 번호가 아니다.
도시의 길과 길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이름으로 표현한 하나의 지도에 가깝다.
어쩌면 우리가 매일 지나치는 도시는 생각보다 훨씬 체계적으로 만들어져 있는지도 모른다.
한눈에 정리
- 대로: 일반적으로 폭 40m 이상 또는 왕복 8차로 이상
- 로: 일반적으로 폭 12m 이상 40m 미만 또는 왕복 2차로 이상 8차로 미만
- 길: 대로와 로에 해당하지 않는 도로
- 큰 도로에서 갈라지는 작은 도로에는 주도로와 연결된 형태의 도로명이 붙을 수 있다.
- ‘○○로12길’ 같은 이름은 단순한 별명이 아니라 도로망에서의 위치 관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 도로명주소는 단순한 주소 표기가 아니라 도시의 위치정보를 체계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시스템이다.
다음에 길을 걸을 때 도로명판을 한번 보자.
‘대로’, ‘로’, ‘길’이라는 한 글자에도 대한민국 도시의 구조가 숨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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